2015 북콘서트_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1921년 3월 11일 부에노스아이레스주(州) 마르델플라타에서 이발사 아버지와 재봉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25년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이주해 열 살 때 아버지가 사다 준 반도네온을 연주하면서 음악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각종 라디오 연주회에 출연해 반도네온으로 고전음악을 연주하였고, 1933년에는 헝가리 피아니스트 월다(Bela Wilda)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같은 해 우연히 탱고가수이자 작곡가인 가르델(Carlos Gardel)의 눈에 띄어 그가 만든 영화에 신문팔이 역으로 출연해 직접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1937년 전운이 감돌던 미국을 떠나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뒤, 반도네온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유명한 음악가들에게 두루 가르침을 받았다. 1955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서 밴드를 결성하고 작곡과 연주에 힘쓰던 중 전통적인 탱고음악에 식상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1958년 뉴욕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여기서도 주목을 받지 못하고, 1960년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5중주단(Quinteto Nuevo Tango)을 결성하였다. 이 때부터 피아졸라는 자신의 탱고를 새로운 탱고, 즉 누에보 탱고로 부르며 기존의 탱고와는 다른 독창적인 아르헨티나 탱고의 시대를 열었다. 1974년 유럽으로 건너가 10년간 파리·암스테르담·빈은 물론, 뉴욕·도쿄 등 세계 각국을 오가며 자신의 음악을 널리 알렸다. 이 시기는 유럽에서 탱고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하던 때로 피아졸라의 새로운 탱고 역시 클래식 음악계의 관심을 모았다. 특히 1992년 크로노스 4중주단이 발표한 피아졸라의 작품집 《다섯 개의 탱고 센세이션 Five Tango Sensation》은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피아졸라를 '탱고의 황제'로 끌어올렸다. 탱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은 작곡가이자 반도네온 연주의 거장으로, 일명 '탱고의 전설'로 통한다. 1990년 파리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뒤, 1992년 7월 5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죽었다. 지금 연주되고 있는 곡은 1962년 극작가 알베르토 로드리게스 뮤뇨스의 새로운 무대극 '늘어뜨린 금발머리'를 위한 곡으로 나중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여름'으로 명명되는 곡이 태어났다. 그리고 1969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의 구상을 토대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가을'이 작곡되고, 같은 해 '봄', '겨울'도 연달아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레지나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피아졸라는 바발디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이 곡을 작곡했다. 이곡에 대한 일화는 피아졸라가 브라질에서 리사이틀을 마치고 돌아와서, 아직 쓰지 못했던 곡을 다음날 녹음해야 한다는 것을 떠올리고 놀랍게도 하룻밤만에 명곡을 작곡했는 것으로 유명하다.듣고 있는 곡은 사계 중 '봄'이다.
*강연
제 책을 보신 분들이 제일 많이 이야기하시는 것 중 하나가 책이 500여 페이지쯤 되니까 책을 다 안 읽진 않고요. 그러니까 저자소개 보고 제 책에 저자소개가 좀 길어요. 그러니까 저자소개가 재미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책이 재미있어야 되는데 저자소개가 재미있어서 좀 죄송스럽긴 한데 오늘도 저자소개 겸 해서 제가 살아온 경로와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말씀드리는 걸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저는 황해문화라고 인천에서 나온 지 20년이 넘은 계간지의 편집장으로 20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화관련 일을 하지만 제가 2000년부터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이라는 홈페이지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도 ‘문화’자가 들어가죠. ‘문화망명지’에는 부제가 있는데요. ‘사람으로 본 20세기 문화예술사’ 입니다. 그래서 제가 문학, 음악, 미술, 사진, 영화 이런 데서 선정한 예술가들을 소개하고 그 사람의 생애를 이야기하면서 시대를 같이 보는 그런 사이트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문화대학원에 들어가서 문화연구를 하고 있고 현재는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 국제문화연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문화하고 인연이 깊은 사람입니다. 문화재단에서 일을 하고 있죠.
그럼 도대체 문화가 뭐냐. 문화가 뭐길래 우리를 지배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폴 부르제’의 이야기를 ‘폴 발레리’의 이야기로 잘못 아시는데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문화라는 것은 우리 주변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잖아요. 문화가 구체적인 어떤 상을 갖고 있거나 물질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우리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 우리가 늘 마주보고 먹고 마시고 놀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그 일상을 지배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 말이 저는 문학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말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 일상에서 문화가 잘 보이지 않을까요? 일상 속에서 문화가 우리하고 너무 밀접하게 붙어있기 때문이죠. 문화는 마치 공기와 같이 우리 속에 같이 있으니까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한국어, 우리 모국어를 말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의 문화는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면서 내내 우리 곁에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보지 않거나 갑자기 낯선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우리나라가 잘 보이지 않는 거죠. 이것은 영월에 있는 한반도지형이라는 곳이지요. 숲 속에 있을 때는 이런 게 보이지 않습니다만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그 바깥, 숲 바깥에 나오면 보이는 거죠. 그래서 외부자의 시선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그 어떤 구조, 문화의 구조를 본다, 이것이 무엇이냐 제가 말하는 문화망명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문화망명을 통해서 문화를 볼 수 있다는 거죠. 어떤 글을 쓰든지 생각할 때 거리를 두는 것 하고 낯설게 보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한 거예요.
흔히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이 누구냐 할 때 여러 학자들이 열심히 연구를 했습니다. 칼 맑스는 자본가 계급이라고 얘기했고요. 막스 베버는 관료제를 얘기했고, 그람시는 헤게모니라는 말을 통해서 시민사회를 통해 문화적 지배를 이야기 하고 소스타인 베블런이라는 사람은 유한계급, 소위 말해서 사회적으로 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그걸 바라보고 마치 궁중요리가 양반요리가 되고 양반요리가 평민요리가 되듯이 문화가 흘러간다는 식으로 된다고 보았고, 밀스의 경우에는 미국의 사회학자인데 미국을 살펴봤더니 군산정복합체, 파워 엘리트들이 장악해서 미국이란 국가가 돌아가더라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제 책에서 뭐라고 이야기 하냐면 기업이다.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있는 것 특히나 후기자본주의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기업이다. 제가 앞서 연주회 때 베토벤 시대의 이야기를 했잖아요. 기업이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죠. 그 사람들은 마치 왕조와 같습니다. 부르봉 왕조, 합스부르크 왕조처럼 여러 기업들을 문어발식으로 소유하고 그 사람들이 대를 이어서 기업을 통해서 사회를 지배하죠. 그리고 주식회사의 경우에는 책임으로부터도 일정하게 면제를 받습니다. 왜? 주식회사가 뭐에요. 주식을 투자한 만큼만 책임을 지면 되는 거잖아요. 무한책임이 아니죠.
이 그림은 제가 그린 것은 아니에요. 제가 그림을 잘 그리진 않는데, 이것은 과거 18세기부터 계속 존재하던 사회구조도입니다. 그것을 현대 버전으로 만든 것 인데 자본주의 체제가 사회를 어떻게 구조화하고 통치하는가.
우리는 너를 통치한다.
우리는 너를 바보로 만든다
우리는 너를 쏴 죽인다
우리는 너희를 위해서 먹는다
그리고 우리는 너희를 모두 벌어 먹여 살린다
이렇게 본다는 거죠
이 사람은 애덤 스미스라는 사람입니다. 국부론을 쓴 사람이죠.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에 이미 자본주의의 탄생을 예견한 사람입니다. 대단한 사람이죠. 이분이 뭐라고 그러셨냐, 세상이 돌아가는 이유는 푸줏간 주인, 술도가 주인이나 빵집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을 통해서 경제활동을 하기 때문에 세상이 돌아가는 거지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파를 하셨죠. 그것이 바로, 그것의 원리 서로 자기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면 세상은 잘 돌아갈 것이라고 보는 겁니다. 자유방임주의 경제의 철학이 탄생을 한 거죠. 처음 초기 자본주의의 원리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요. 이것은 당시에 19세기 20세기 초반에 미국사회에 가장 큰 기업 록펠러가 하던 기업이죠.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스탠더드 오일이 미국을 완전 장악해 버리는 게 아니냐 라는 비판을 담은 당시 카툰입니다. 제 책에도 이미 나오는 얘기인데요. 이분들이 누구냐 하면 당시 록펠러가 지배하던 그 구리광산이 있습니다. 러들로우라는 유명한, 나중에 이 사건이 있지 않았다면 이름 자체도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이름인데, 제가 막노동을 할 때 가면 밥을 먹는 곳이 있어요. 뭐라고 하냐면 함바집이라고 합니다. 함바집에서는 우리에게 돈을 받기 전에 선으로 밥을 먹게 해줘요. 선이자를 떼죠.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록펠러네 집안에서 하는 광산인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의 월세, 사는 집의 월세 식대 이런 걸 미리 떼고 줍니다 선이자 떼듯이. 그리고 그런 조건이 굉장히 열악했어요. 먹고 살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어떤 젊은 노동조합 지도자가 그런 문제를 제기 했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총맞아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격분한 러들로우 광산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기 시작을 해요. 그러니까 록펠러 집안에서 고용한 자경단들이 와서 무차별하게 사람들을 때리고 린치를 가하고 노조파괴활동을 하죠. 이 사람들이 치사해서 록펠러의 집안이 주는 집에서 안 살고 밥 안 먹고 그들끼리 텐트치고 나갔습니다. 근데 자경단들이 자꾸 폭력을 행사하니까 이 사람들이 되게 그랬을꺼 아니에요. 그래서 드디어 주방위군이 출동을 합니다. 주방위군이 출동해서 우릴 도와주나 보다 했겠죠. 주 방위군이 출동해서 기관총을 난사했습니다. 그래서 24명의 사람이 죽는데요. 그 중에서 12명이 어린이였습니다. 여자는 기억이 안납니다. 그래서 이 사건으로 미국 내에서 굉장한 분란이 일어나죠. 도대체 록펠러라는 사람이 뭐길래 주방위군이 동원돼서 갔는데 시민들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을 총을 쏴서 죽이냐? 그것이 하마터면 은폐될 뻔 했습니다. 그러면서 록펠러가 그때부터 뭘 하죠? 기부활동을 시작합니다. 너무 이미지가 나빠져서, 그리고 이미지가 나빠지는 바람에 이른바 ‘셔먼법’이라는 것이 돼요.
‘셔먼법’이라는 것이 뭐냐. 스탠더드 오일이 미국에 석유사업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니까, 너무나 많은 것을 독점하니까 독점금지법이죠. 여기 변호사님도 와 계시지만. 그래서 스탠더드 오일을 갈갈이 해체하게 됩니다. 스탠더드 오일이 얼마나 대단했느냐 하면 지금도 우리 인천시립박물관에 가면 스탠더드 오일이 구한말에 멀고 먼 조선땅에 석유를 공급한 석유깡통이 있어요. 그리고 당시에 그래서 십 몇 개 기업으로 분리가 되는데 그 십 몇 개의 기업 중에서 1등부터 5등까지, 포보스란 잡지가 계속해서 미국의 역대 부자들을 순위를 매깁니다. 예전에는 당연히 1등이 록펠러였구요. 스탠더드 오일이 해체되고 나서 어떻게 되느냐, 1등부터 5등까지가 스탠더드 오일이었어요. 해체되어서 나온 계열사들이 전세계에서 1등부터 5등까지의 부자였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대단한 부자였던 거죠. 당시에 우리가 알고 있는 카네기, 그리고 철도를 했던, 지금도 미국의 유명한 대학 재단을 갖고 있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들로부터 시작돼서 이 사람들이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대단한 사람들이었어요. 이 사람들을 비판하며 노상강도귀족이라고 불렀어요. 원래 노상강도귀족이라는 것은 16세기에서 17세기에 독일에서 길과 길 사이를 오고 가는 통행료를 받던 독일 귀족들을 욕하던 용어인데 그것이 19세기에서 20세기를 넘어오는 초엽에 미국에서 다시 탄생했다는 거죠.
우리가 사회시간에 배우는 거죠. 개인에게는 세 가지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노동자의 권리, 하나는 소비자로서의 권리, 하나는 시민으로서의 권리죠. 그런데 한 사람에게 세가지 권리가 있는데 이중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 못하게 하니까 어떻게 돼요. 소비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거에요. 뭔가 돈을 벌어서 돈을 써야 되는데 당장에 먹고 살 것 밖에 할 수 없는 거죠. 우리가 엥겔지수라고 하는 거잖아요. 소비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포드를 이야기할 때 컨베이어벨트만 생각하는데 사실 포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노동자들에게 높은 임금을 지급했다는 것 입니다. 다른 데보다도 높은 임금을 지급하다 보니 그 사람들이 어떻게 돼요? 소비할 여력이 생기게 되죠. 소비를 하게 되니까 더 많은 생산활동이 이루어지게 되죠. 그러다 보니까 선 순환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그것이 이른바 수정자본주의시대의 선순환 구조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지금도 역시 컨베이어벨트에 의해 생산되는 라인들은 계속 있습니다. 이것이 포디즘 체제를 얘기 하는데, 국가가 기업에게 최저임금 같은 것들을 적용하도록 해서 노동자가 너무 못사는 상태로 내려가지 않도록 방어해주고 기업은 일정하게 고임금을 지급을 함으로써 이 사람들이 계속해서 소비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거죠. 그러면서 대단위 제조 시스템이 탄생하는 겁니다. 그게 포디즘인데, 그러다 보니 대규모 노동자들이 활동을 하게 되니까 대규모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게 돼요. 노동자들이 어떤 더 강한 힘을 갖게 되죠. 그러면서 나름대로는 자본주의 황금시대라고 하는 1960년대까지, 베트남전 이전 그리고 석유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구미국가들이 (우리하고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자본주의 황금시대가 만들어집니다.
근데 우리가 흔히 이야기할 때 현대사회를 뭐라고 해요. 지식정보산업사회라고 하잖아요. 지식정보산업사회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고령화 사회입니다. 왜? 이 둘 사이에 굉장히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현대 의학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의 수명이 연장돼요. 그러서 과거에는 춘향이 하고 이몽룡이 어린 나이에 서로 결혼하잖아요. 그때는 평균 수명이 40여 세였어요. 많아 봐야 45세였으니까 빨리 결혼해서 빨리 애를 낳고 빨리 키우고 죽어야 돼요. 그러니까 대학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그런데 제 책에도 나와 있지만 샘 월튼의 시대부터 사람들의 수명이 늘어나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과거에,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대학에 들어간 애들보다 돈을 벌죠. 대학에 들어가면 돈을 쓰잖아요. 그렇죠. 고등학교는 월급을 받지 않습니까?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서 돈을 쓰던 애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는 순간부터 몇 년 만에 역전이 되어버리죠. 더 많은 월급을 받잖아요. 체제 자체가 대학을 졸업하면 고임금을 받는 것을. 샘 월튼이 그것을 계산해 본거에요. 계산을 해보고 나서 내가 지금 취업을 해서 돈을 버는 것 보다 대학에 가서 4년에 소득을 유보하는 기간 동안에 돈을 벌어가지고 나중에 하는게 더 낫겠다. 그러면서 이른바 지식정보산업사회가 시작하게 된 겁니다. 지식정보산업사회와 고령화 사회는 굉장히 긴밀한 관계가 있다. 문화적으로 그렇게 보셔야 된다는 겁니다. 그럼 고령화 사회가 된다는 건 뭐에요? 노동하지 않고 사회에 복지체제에 기대서 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노인들은 소비도 많이 안 하십니다. 안 하시죠. 돈 쓸 때가 별로 없어요. 이미 가질 건 다 가졌고 해볼 건 다 해보셨고 그런 분들이 많다 보니까. 요새는 이런 얘기 어디 가서 함부로 하면 당당한 어르신께 뺨 맞을 일이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현실사회주의라는 하나의 방벽이 무너지기 시작해요. 방벽이 무너지면서 동유럽의 값싼 노동력이 서유럽의 비싼 노동력에 비해서 경쟁력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서유럽에 공장, 자본들이 동유럽으로 이전하게 되죠. 그러면서 국가와 노동자가 힘이 약해집니다. 복지국가체제가 기업에, 국가에 막대한 복지부담을 주게 되니까요. 그러면서 출현하게 되는 것이 신자유주의인데 여러분들에게 질문 하나 할께요. 미래에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듣게 될 질문 두 가지가 있습니다. 뭘까요? 제가 이걸 학부모님들에게 강의를 이렇게 했다가 학부모님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은 적이 있는데 첫째, 엄마 나 왜 이렇게 힘든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고생시켜? 왜 이렇게 맨날 공부해야 되고 학원 다녀야 되고 그렇게 해도 취업도 잘 안되고 그렇죠? 삼포세대니 달관세대니 이런 얘기 나오잖아요. 두 번째 질문이 핵심입니다. 엄마아빠 물려줄 재산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오래 사십니까? 애들이 이런 얘길 할 거에요. 이미 시작됐죠. 진보진영에서 신자유주의 대놓고 많은 비판을 합니다. 신자유주의 때문에 이세상이 살기 힘들어진 게 아니에요. 사실은. 이세상이 살기 힘든 건 자본주의 체제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모순 때문입니다. 그 모순을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한 분들이 이분들이에요. 자본주의란 틀을 그냥 놓은 상태에서. 이분들이 무슨 이야길 했었느냐. 마가렛 대처가 한 이야기 입니다. ‘너희들이 그 동안에 사회 이야기하고 사회복지 이야기하는데 그런 사회는 이제 없다. 기대하지 말라’라고 얘기했어요. 과거에 우리가 권위주의 독재시절에는 국가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을 하면 이렇게 됐습니다. 히틀러나 도조 히데키, 무솔리니같이 이런 시스템으로 가게 된 거죠.
그런데 점점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사람들이 인제는 핀란드의 노키아, 한국의 삼성 그렇게 기업의 권력에 대해서 자기도 모르게 ‘삼성이 잘돼야 우리가 잘돼’ 라고 생각하게 돼요. 그러면서 이런 사회가 되는 거죠. 기업지배사회가 되는 겁니다. 기업지배사회에서 우리 이건희회장께서 뭐라고 얘기 하셨냐면, 제가 지금은 황해문화에서 이런 잡지를 만들지만 그전에는 삼성경제연구소와도 같이 작업을 했었고요. 한보그룹하고도 같이 작업을 했었고 이런저런 기업체들하고 같이 작업을 하는 광고쟁이였어요. 당시에 삼성에서 삼성올림픽이라는 것을 하면서 이건희 회장이, 지금도 생각나는게, 요크셔테리어를 이렇게 들고 사진을 찍으시며 뭐라고 이야기를 하셨냐면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 그러죠. 그게 사실은 자기계발주의의 선언이었어요. 그게 90년대 초반에 있었던 일입니다. 삼성이 다르긴 달라요. IMF외환위기 이후에 대게 일반적인 기업들에서 자기계발열풍이 부는데 삼성은 이미 94년 무렵부터 저런 얘기를 했던 거에요.
이 광고 많이들 보신 적 있으실 것입니다. BC카드 광고죠. “여러분 부자 되세요!” 한참 하고 너도나도 저런 얘기를 많이 하고 다녔죠. 언제요? 외환위기 나오고 나서. 그때부터 우리는 국가가, 기업이, 정년을 보장해주지 않고 나의 노후생활을 챙겨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각자 네 인생은 네가 책임지세요 라고 서로 속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자기계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대학을 가야 합니다. 대학을 가야 하는데 우리나라가 대학등록금이 이렇습니다. 민간 부담률이 굉장히 높아요. 우리는 공교육의 나라가 아니고 사교육의 나라이기 때문에, 이것 보시면 됩니다. 1위가 미국 2위가 한국 3위가 일본입니다. 그런데 모든 게 마찬가지지만 스위스 애들은 대학을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아도 고소득을 받고 잘 살아요. 그런데 한국사회는 뭐죠. 모두가 대학을 가야지만 어느 정도 살게 되다 보니까 대학 진학률이 굉장히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러면서 흔히 대중교육이라는 것을 취학률, 학교 진학하는 것이 15% 이상부터는 더 이상 엘리트 교육이 아닌 대중교육이라 보는데 우리가 1980년부터 대학교육이 엘리트교육이 아닌 일반적인 교육이 됐어요. 그리고 50%를 넘으면 보편교육이 됩니다. 그런데 95년에 55.1% 지금은 71.3%니까. 그러니까 어디 가서 서로 나이를 물어보지 않고 뭐 물어보죠? 학번 물어보는 사회가 된 거에요 우리가. 거기 안에 못 드는 사람들이 소외되는 사회가 된 거죠. 대학 안 나온 사람이 더 적은 사회가 된 거에요.
신자유주의와 그 이후에 기업지배사회에서 한 가지 특징이 뭐냐면 대중자본주의시대로 탈바꿈 됐다는 겁니다.
과거에는 주주라고 하면 턱시도 입고 나비넥타이 매고 고급 벤틀리를 타고 자기들끼리의 조그만 클럽에 모여서 미래 운명을 좌지우지 합니다. 마치 얄타회담에 모인 루스벨트와 스탈린과 처칠처럼 어떤 기업을 죽일까 살릴까를 자기들끼리 원탁회의에 모여서 신사들이 시가를 피면서 그런 걸 상의했어요. 그런데 대중자본주의시대가 되면서 포드사가 1950년대에 기업공개를 합니다. 누구나 주식을 살수가 있게 돼요. 그러면서 주주가 계속 늘어나더니 62년도에는 제너럴 모터스의 주주가 100만 명을 넘습니다. 그러니까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본가가 된 거에요. 개미라고 하지만 자본가가 된 거죠. 그리고 그 숫자는 그 이후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러면서 어떤 것이 생기냐. 더 이상 이 사람들이 자기가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경영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해요.
1961년에 (여러분들 ‘서프라이즈’라는 방송 통해서 많이 보셨을 텐데) 스탠리 밀그램 이란 교수가 있었어요. 사회심리학자인데 이 사람이 대학생 그룹들을 둘로 나눠서 하나는 간수, 하나는 죄수그룹으로 나눠서 전기고문하는 실험을 합니다. 그것이 아마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인데, 입장을 나눠서 어떤 척이 있을 때 그 사람이 사고가 그거에 따라서 규정돼서 따라간다는 그런 실험이었어요. 그러니까 마치 히틀러 체제하에서 거기에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유태인을 학살하던 사람들의 심리는 도대체 인간이라면 어떻게 그런 것에 저항하지 않고 따라갈 수 있었지 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던 실험이었어요. 그런데 1970년대 미국에 제약회사 업존이라는 데서 신약을 아주 많은 돈을 들여서 개발을 합니다. 그 약 이름이 '파날바'에요. 그 ‘파날바’가 시판되는 동시에 폭발적으로 약이 잘 팔렸어요. 그런데 FDA라는 미국식품의약국에서 “이 약의 부작용이 의심된다. 좀 위험하다. 그러니 판매를 너희들 스스로 중단하면 어떻겠니” 라고 제안을 합니다. 그러자 업존에서 특별이사회를 개최하는데 우리가 이것으로 매월 백만달러를 벌어들이는데 우리가 스스로 거둬들이면 매월 백만달러씩 벌어들이는 소득을 우리가 스스로 발로 차는 게 아니냐. 그러지 말고 우리가 연방정부에 법적 공방을 통해서 이 판매기간을 연장하자. 그 동안에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지 않냐 그런 선택을 해요. 그러면서 굉장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시기에는 독일의 경우에도 잘못된 약으로 기형아들이 많이 태어나는 그런 사건들도 있었기 때문에 의약품의 안전성에 대해서 굉장히 진지하게 고민을 하던 시대였어요. 그래서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와튼 스쿨은 경영학 분야에서 대단한 명문학교입니다. 그곳에 스콧 암스트롱 교수가 이 실험을 해봐요.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과 똑같이 처음에 일반대학생들에게 물어봅니다. 저 업존의 이사회가 결정한 것에 대해서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랬더니 97%가 잘못됐다고 얘기해요. 그것은 업존의 특별이사회가 잘못 선택을 한 거야. 그러냐. 그러면 우리가 한번 이 업존의 특별 이사회를 모의재판을 하듯이 모의이사회를 개최합니다. 여러분들을 모두 이사회에 선임한 거에요. 업존이. 그리고 여기 모여서 토론을 합니다. 이 약을 팔거냐 말거냐 어쩌구 저쩌구. 그 결과는 어떻느냐? 놀랍게도 모두가 팔자로 결정을 합니다. 이런 실험을 수십 차례 반복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거의 대동소이 했어요. 무슨 얘기냐? 대중자본주의시대에 스스로 펀드에 가입하거나 아니면 어디 주식을 투자했다거나 이런 사람들은 자기 마인드를 뭐로 갖는다? 경영자상을 갖는 거에요. 스스로. 이 실험대로. 그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상당수가 계시죠.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가격만 이야기하는데요. 실제로는 부동산도 있지만 저런 주식과 펀드도 사람들의 심리를 보수화 시키거나 저런 친 기업적인 마인드를 갖게 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되더라 하는 걸 말씀 드리기 위해서 이런 실험을 소개해 드린 겁니다.
신자유주의 이후에는 기업들이 어떤 민영화를 하면서 국가가 하던 기능들에서 점점 후퇴하고 빠져나가기 시작해요. 과거에는 국가가 하던 것들이. 그러면서 맨 처음 1984년에 미국에서 멕시코 국경에서 넘어온 불법체류자에 대한 보호시설을 민간에게 위탁을 합니다. 이때가 우리가 잘 아는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을 하던 시기에요. 그 다음에 85년 켄터키 주정부 교도소가 민간위탁이 되고 드디어는 미 법무부가 국가차원에서 이런 걸 합니다. 그리고 현재는 민간교도소 사업체인 CCA라는 사업체가 일 년에 17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전쟁을 치르면 치를수록 미국은 베트남전 이후에 얻은 교육이 있죠. 사망자숫자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그래서 직업군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사망자수에 민감합니다. 물론 베트남전은 징벌제로 해서 일반 대학생들이나 사회계층 노동자들 자식들이 가서 전쟁터에서 총알받이로 희생되기도 하고 그랬었지만, 그 이후부터 전쟁에 되도록이면 징병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왜냐면 징병을 하면 시민병사들이 되는 거잖아요. 시민사회의 감시와 통제아래 놓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돈을 주고 용병을 고용하게 되는 겁니다. 미국에는 PMC라는 용병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받는 월급이 어마어마한 거에요. 그러니까 돈을 줄이기 위해서 이런 사람들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치르는 데 시민사회의 감시와 통제 밖에서 전쟁을 하기 위해서 저런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 겁니다. 민영화라는 것이 그런 모양이죠.
그러고 이 영화가 여러분들이 아시는 ‘로보캅’ 이라는 영화인데, 이 영화 만들어진 게 1984년인가 6년인가 그래요. ‘로보캅 1’ 이 영화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요. SF영화가 아니라 리얼리즘 영화였던 거에요. 사실은. 미국사회에. 007인데요. Quantum of Solace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 보시면 물 민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그런데 이 영화 속에서 다뤄지고 있는 사건이 아주 가난한 남미, 중남미 국가인데 빗물도 못 받아 마셔요. 빗물을 받아 마시면 자경단이 와서 살해합니다. 물을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만 사 먹어야 돼요. 실화입니다. 볼리비아. 미국 벡텔이라는 회사에서 수돗물을 민영화해서 팔았어요. 그리고 빗물을 받아먹는 것도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물값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랐겠죠. 그러다 보니까 국제사회에서 굉장히 비난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2006년에 결국에 반납합니다. 이 영화가 그냥 나온 게 아니라 그런 배경 속에서 나왔다는 것. 국가기능의 민영화가 그런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 저는 문화라는 것은 우리가 어떤 체제가 있는데 그 체제가 우리를 지배하거나, 사회라는 게 누군가는 사회를 이끌어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 그렇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최소한 ‘너희들에게도 희망이 있어, 너희들에게도 뭘 할 수가 있어’라는 메시지를 그 사회가 계속 줘야 돼요. 그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 예를 들면 우리 학교가 왜 파탄이 났을까요? 애들이 대학교 가기 힘들다는 거 알아요. 또 대학교 가봐야 취업하기 힘들다는 거 알아요. 취업해봐야 정년 채우기 어렵다는 거 알아요. 애들이 그거 다 알아요. 선생님이 뭘 가지고 애들을 설득하겠어요. 신현수 선생님도 계시지만 이미 나는 공부 안 할래요. 포기 했어요 저는. 그러면 그 애를 때려서 공부를 시키겠습니까 뭘 하겠습니까? 우리사회가 어떠냐면 그래도 공부 해야지 라고 말하는 것 조차도 포기한 사회라는 거에요. 너 뭘 어떻게 해라, 이렇게 하면 잘 될 것이다. 그런 것 조차도 포기해버린 사회라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돈이면 다 되는 사회가 됐어요. 2007년에 아시죠.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 2010년에 ‘너 내가 2000만원 줄 테니까 쇠파이프로 10대만 맞자’ 최철원일가. 피죤기업의 이윤재회장이 전임사장 청부폭행 했다는 얘기. 2012년에 역시 또 임직원들 조인트 까던 얘기. 2013년에 통계조사를 했더니 고등학생 중에 44%가 10억 주면 기꺼이 감옥에 가겠다고 하는 사회가 대한민국 사회죠.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돼요. 우리 한진그룹에 그분 따님이 그렇게 애 무릎 꿇려놓고 비행기 돌리는 그런 사회가 되잖아요. 우리사회가…
그리고 IMF 외환위기 직후에 벌어진 자살률입니다. 그 다음에 이것은 외환위기 이후에 자살률. 자살률이 사실은 이 상태에서도 굉장히 높은데 경제위기 이후에 자살률이 저렇게 급증한다는 것은 결국은 무슨 얘기냐. 우리사회 삶이 희망을 갖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얘기죠. 빌프레도 파레토 라는 사람이 20대80사회 얘기한 게 아주 오래 전도 아니지만 오래 전 얘기에요. 이미 이때 자본주의 연구를 해보니까 ‘20%의 사람이 전체 80% 부를 소유하고 있고 20%의 노동자가 80%의 일을 하고 20%의 소비자가 전체매출의 80%을 차지한다’ 라는 ==을 발표합니다. 무슨 얘기냐. 옛날에 우리 어렸을 때는 돈 많은 집 애가 비리비리하고 공부 잘 못하고 그랬잖아요. 요즘은 어떠냐. 공부 잘하는 애가 싸움도 잘하고 집도 부자고 또 악기도 다룰 줄 알고 이런 시대가 된 거에요. 근데 이게 실제로 그럼 어떠냐. 함 보시죠.
제가 마케팅 공부를 원래는 안 했었는데 이 책을 쓰기 위해서 마케팅 공부를 되게 열심히 했어요. 마케팅 공부를 하다 보니까. 여러가지 마케팅 기법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귀족 마케팅, 다른 하나가 디마케팅이더라구요.
귀족마케팅이란 건 이런 겁니다. 이중에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백화점에 가면, 현대백화점에 가면 자스민그룹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 다음에 롯데백화점에 가면 MVG라는 그룹이 있고, 신세계는 그냥 VVIP 아마 그런 것 같아요. 이분들이 (현대백화점의 경우에는) 들어가면 자스민그룹은 맨 꼭대기 층에 있어요. 그분들은 차를 자기가 주차 안 합니다. 내려서 키를 딱 줘요. 그러면 주차를 해줍니다. 올라가요. 올라가면 개인 마케터가 있어요. 사모님은 샤넬에서 신제품이 이게 나왔어요. 이게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 딱 대령해줘요. 애들하고 같이 아랫것들하고 매장을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절대. 차가 딱 대령해서 나오고 그 다음에 이분 중에서 제가 알고 있기로 백 명인가요 몇 백 명인가를 상위매출 몇 프로 하면 억대가 넘는 몇 십 억대입니다. 사장님의 사모님들이거나 사장님이거나 그렇겠죠. 그분들만 따로 모시고 뭘 가죠? 해외 크루즈를 갑니다. 해외 크루즈를 가면 이분들이 놀러 가는 것 같죠? 아니에요. 네트워크를 만들러 가는 거죠. 미래 네트워크 사회니까. 마뉴엘 카스텔스가 얘기한 것처럼 네트워크 사회입니다. 근데 그 네트워크는 단지 인터넷 네트워크만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지역사회에서도 그런 네트워크들이 가동하고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그런 사람들이 백화점도 통계를 내보니까 20%의 사람들이 80%의 매출을 올려 주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집중하게 되는 거에요. 나머지 아랫것들은 그냥 다니면서 그렇게 다니는 거고 은행도 해보니까 똑같아요. 그래서 은행에서도 돈을 많이 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되죠. 안으로 그냥 바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전화 와요 무슨 때 되면. 신권. 예를 들면 설날이나 추석 때 세뱃돈 주기 위해서 보통 샐러리맨들은 가서 얼마까지 될 수 있을 까요? 물어보잖아요. 그분들은 전화가 먼저 와요. 사장님 누구 누구님! 얼마 필요하세요? 그러면 딱 해가지고 가져다 드립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죠. 점점 80%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뭐냐. 디마케팅이에요. 그런 애들을 우리 백화점에 못 오게 좀 해라. 그런 애들은 우리 은행에 좀 못 오게 해라. 하는 것이 마케팅이에요. 요새 여러분들 은행가서 만약에 자기 확실한 월 소득이 없는 분들, 은행가서 통장 만들어 보셨어요? 통장 만들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통장개설 잘 안 해줘요. 그리고 일반 가정주부들 신용카드 개설하기 굉장히 힘듭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100원짜리 가져가면 세어서 얼만데요 하고 통장에 딱 찍어 주잖아요. 요새는 당신이 세서 가져오라고 해요. 왜? 그런 푼돈 받아봐야 은행에서 금리도 낮고 그리고 별로 돈도 안되니까 오지 마세요 라는 얘기에요. 서민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마케팅비용만 많이 들어가고 실제로 소득을 올리지 못하니까 그런 사람들 좀 덜 오게 해달라. 라는 기법이 바로 비 마케팅 기법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 2000년도에 벌써 한국 무슨 경제연구원 같은데 있잖아요. 그런데서 학자들이 이미 한국사회도 이런 디마케팅 기법들이 필요하고 기업들에 도입이 되었다 라고 연구조사결과에 나왔어요.
이것을 한번 보시면 크레디트 스위스은행에서 발 표한 자료인데 전세계 사람들의 70%가 만 달러 미만의 재산을 가지고 삽니다. 그걸 전체 100%로 봤을 때는 3.3%밖에 안돼요. 그러니까 70% 사람이 전세계 부의 3.3%밖에 차지를 못한다는 얘기에요. ‘전 지구화’라는 게 뭐냐면 이런 가난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얘기이고 세계 0.6%의 사람이 100만 달러 이상, 이 사람들이 세계 전체 부의 40%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지구화라는 것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라는 것 이고요.
자기계발사회에서는 뭐냐 하면, 네가 성공하려면 스스로 자기를 계속해서 연마하고 계발하고 그러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라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신자유주의에서 이야기 하는 어떤 이데올로기 중에 하난데 대한민국이 대표적으로 어떤 사회입니까. 학력을 중요하게 따지는 사회입니다. 왜? 원래부터 가진 게 없었고 인재가 세상을 바꾼다는 그런 주의가 있었어요 옛날부터 교육에 대한 그러다 보니까.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나와봐야 별 도움이 안 되는 사회가 된 거죠. 그렇지만 여전히 그런 식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학력주의가 처음 출현한 것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더 이상 혈연을 중심으로 사회지배엘리트가 되지 않고
부르주아들이 엘리트가 되는데 부르주아들이 자신들의 사회에 엘리트가 될 수 있는 명분으로 내세운 거에요. 나는 무슨 소르본대학을 나왔다. 나는 어떤 공부를 한다. 그러니까 판사가 돼야 된다. 내가 변호사가 돼야 된다. 내가 뭐가 돼야 된다. 이러면서 그 사람들이 했던 거죠.
그런데 그 부분에서 결국에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공부를 할 수 있었잖아요. 옛날에도 양반들 말고 평민들도 과거시험 볼 수는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공부할 시간과 돈이 없었죠. 지금도 역시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것 한번 보세요. 지금도 방송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빠 어디가 이런 프로그램 있지요. 그 다음에 이거는 붕어빵인가 그렇습니다. 이게 다 뭐에요. 연애인 2세들이 나와서 하고 있는 거잖아요. 예전에는 신포시장 닭강정집 같은 곳에 가면 자식들은 일 안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자식들이 일을 합니다. 왜? 물려받아야죠. 노나는 사업 아닙니까. 물려받아야 되니까. 자 학력사회 학력사회 하는데 정몽구회장 있죠. 현기차 회장. 정몽구회장이 어느 학교 나왔는지 혹시 아세요? 고대요? 현대자동차의 정몽구회장은 한양대학교 나왔습니다. 사실 학교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사실은 우리끼리만 계속 없는 사람들끼리만 어느 대학을 나왔냐 뭐 했냐 따지는 거죠. 실제로는 세습인 거죠. 제가 어렸을 때 이런 만화를 일요일 아침마다 해줬어요. 되게 열심히 봤는데 이 만화의 첫 장면을 여러분이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사회에요. 그런데 부자들은 기계 몸을 얻었어요. 아주 비싼 돈을 주고 기계 몸을 얻었지만 이런 아이는 기계 몸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 먹고 싸야 돼요. 근데 이 사람들은 기계 몸을 얻었기 때문에 더 이상 먹고 쌀 필요가 없어요. 단지 그 돈을 가지고 뭘 하느냐. 아직 사람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을 사냥하고 다닙니다. 그래서 첫 장면에 보면 철이의 엄마가 기계백작의 사유지에 침범했다가 사냥 당해요. 사냥 당해서 죽고 그 다음에 박제가 돼가지고 기계백작의 궁에 딱 걸려있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요새 잉여잉여 얘기 많이 나오죠. 무슨 얘기냐. 제가 아까 맨 처음에 이런 얘기를 했어요. 정치적으로 개인은 세가지 주체성이 있는데 하나는 노동자, 하나는 소비자, 하나는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를 했잖습니까.
노동자의 자리는 뭐에 빼앗겨요. 기계에게 사무용 로봇들에게 빼앗기고 있습니다. 소비자는 20대80사회에서는 20%사람이 80% 매출을 올려주기 때문에 이 80% 사람들, 많은 것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 소비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도 소비자도 될 수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을 뭐라 부르겠습니까? 잉여인간이라고 부르는 거에요. 다른 말로 ‘Loser’. 그래서 지금 잉여나 루저나 이런 말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 게 다 저런 배경이 있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사회가 스스로 자살하기 시작합니다. 일본은 서기 3500년, 한국은 2800년 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일본을 못 이기는 겁니다. 뭘까요? 대체 이게. 일본이 3500년에 인구가 한 명이 되고 우리는 2800년에 한 명이 되니까, 일본이 2800년도에 와서 그냥 우리 한반도 가져버리면 돼요. 지금처럼 우리가 스스로 애를 안 낳고 결혼 안하고 이런 체제로 가면 고령화 사회가 이렇게 빨리 진행이 되고 있는 겁니다. 이게 바로 자살하는 사회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노동자 사라졌습니다. 소비자 사라졌습니다. 남은 건 뭐에요. 시민으로서의 주권자로서의 권리밖에는 현재는 없어요. 그런데 이것도 자기계발담론과 기업지배사회에 어떤 논리를 내면화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됐습니까. 각자각자로 고립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좀비가 된 거죠. 살아있지만. 좀비가 뭡니까? 죽었지만 살아있는 욕망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식욕이라는 것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존재잖아요. 물질적인 욕망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는 거에요. 내가 왜 살지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고, 학교에서는 내가 왜 공부를 해야 되는지 배워본 적이 없어요. 그냥 공부해야 되니까 공부를 하는 거고 그러다 보니까 고등학교만 진학을 하게 돼도 애들한테 책을 보게 하면 이상한 사회가 되는 거죠. 그리고 얼마 전에 신문기사에 나왔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책을 보는 아이는 왕따가 된답니다. 교과서와 참고서 이외의 책을 보는 아이들은. 왜? 너 혼자만 왜 공부를 안하고 넌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책을 보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교양을 쌓는다던가 그런 얘기를 하면 굉장히 웃긴 거에요. 요새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고등학생들만 못한 상식과 그런 것들을 갖고 있어요. 아는 게 없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책들도 안 봤어요. 살면서. 제 책에서 얘기하는 것이 자기계발과 자기계몽인데요. 자기를 계발한다, 자신을 경영하는 개인적 주체 대중자본주의 속에서 그렇게 되는 거죠. 사회와 나를 무관한 존재로 생각해요. 그러면서 뭐가 돼요. 이디오테스가 됩니다. 이디오테스란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말인데 호모폴리티쿠스 얘기가 나오는 데 한마디로 말해서 이디오 영어로 멍청이 그 말의 어원이 여기서 나온 겁니다. 이건 무슨 얘기냐 사회에 공동체에 무관심한 자들을 통칭해서 이디오테스라고 해요. 자기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들 그렇게 부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뭐냐면 자기계발 담론을 그대로 수용해서 자기가 열심히 노력하면 나는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얼마 전에 본건데 KTX여자 승무원들의 사례를 대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했대요. 그러면 그 대학생들이 나처럼 같이 울분을 토하면서 여승무원들 편을 들 줄 알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대학생들이 손을 들고 뭐라고 얘기 했냐면 지가 그렇게 그거밖에 할 능력이 안되니까 KTX여승무원 된 게 아니냐,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서 스튜어디스가 됐으면 그런 대접을 안받아도 되지 않았겠느냐 이렇게 반론을 하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이분이 강의를 하다가 말문이 막혀서 더 이상 이 이야기를 못했다고 그래요. 그런 것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공동체로서의 연대의식이나 이런걸 이야기 한다는 게 굉장히 답답했던 거죠.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기계발사회 담론의 끝은 뭐냐. 모든 게 결국에 가서는 자기계발 못한 자기 탓으로 돌아가는 거에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저는 기본적으로 체제나 구조에 대해서 우리가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대학을 진학하기도 어렵지만 대학을 진학하고 사회 취업을 해도 취업하기도 어렵고 그 후에도 계속해서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인데 그런 체제와 시스템 속에 있는데 그저 자기계발만 하면 된다고 아이들을 닦달하고 아이들 힐링해라 뭐해라 하면 그렇게 하다가 벽에 부딪혔을 때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이 들까요. 아 난 멍청이인가봐 난 실패자야 이런 생각을 할거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이 자기혐오를 하다가 안되면 어떻게 되냐면. 계속해서 자기 탓을 하면서 사람이 살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생존을 합리화 하게 되어있어요. 원래. ‘나는 이러이러하니까 살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이야’ 라고 스스로 합리화를 못하면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기가 되게 힘들어요. 그러면서 결국 그걸 바깥에서 찾게 됩니다. 내 바깥. 바깥에 누군가가 나를 실패하게 만든 거야. 그게 누구죠? 이 사회는 모두가 공정하게 경쟁해야 되는데 그 공정하게 경쟁하지 못하게 막는 존재들이 있어. 그런데 체제에 대해서 고민은 안 해봤어. 그러니까 눈에 당장 보이는 사람들 욕해요. 누구? 세월호. 그런 식으로 가버리는 되는 겁니다. 제들은 뭔데 도대체 이런걸 요구해? 애들 소풍 갔다가 그냥 죽은 거 아니야? 교통사고 나서 죽은 거 아니야? 그런데 왜 돈을 달라고 하는 거야? 왜 사회가 나서서 그걸 가지고 공적으로 뭔가를 해결을 해줘야 돼? 왜 내 것을 뺏겨야 되는 거야? 그거 조금 주는 거거든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우리가 얼마나 부자입니까. 그분들에게 7~8억 줄 수도 있어요. 전 그런 담론에 끌려가는 것 자체도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근데 대중이 갖고 있는 시선은 뭐냐면 마치 내가 낸 세금을 뜯어서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것처럼 보는 거에요. 그런 것들을. 무슨 얘기냐. 이런 거에 대한 고민이 없었기 때문에, 체제에 대한 고민이, 이 공동체 사회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에 공감을 못하는 겁니다. 그게 뭐냐. 결국에 체제 자체는 어떤 압력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경쟁이. 그 압력이 어딘가로 빠져나가야 되는데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거에요. 마치 핵발전은 계속 하고 있는데 핵폐기물은 어디다가 갖다 버릴지 어디에 저장할 지 결정 못하고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사회가 지금 현재 굉장히 위험한 사회가 되고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결론을 얘기하는데 결론은 아주 간단합니다.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우리가 살수가 있어요. 주변에 나와 같이 살아야 될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같이 손을 잡고 뭔가를 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어차피 사람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존재 아닙니까? 우리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만나고 있지만 계속해서 만남을 갖고 SNS가 아니라 실제 만나야 됩니다. 실제 만나고 뭔가 조직을 만들고 연대를 하고 이 사회 문제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고 체제나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혼자서 말해봐야 소용이 없잖아요. 그런 것들을 점점 더 많이 해서 시민 사회가 조직화가 돼야 되고, 그런 것을 집단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우리가 갖고 있는 정치적 권리,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권리를 자각하고 그런걸 해야만이 우리 사회가 발전을 할 수 있다, 이 압력을 그나마 줄일 수 있다 라는 것이 제 결론 입니다.
이상으로 제 오늘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등록일 : 2015-07-15조회 : 30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