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일흔 둘에 오른
그러다 보니 성장 과정은 물론 고희를 훌쩍 지난 아직도 외가댁 누이동생들과 우리 형제들은 남다른 가족 우애를 가지고 잘살고 있다. 그 과정에 벌써 수 십 년 전부터 이어오는 외가댁과 함께하는 친목모임(한마음친목회)에서 13명이 3년 전 호주 뉴질랜드 여행에 이어 올해는 또다시 동남아 쪽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계획을 했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자그마치 15명이나 되는 많은 인원이 우리나라보다 볼거리가 못한 동남아 쪽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는 ‘세계가 주목하는 유네스코지정 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생물보전권 지역, 람사르람 습지, 한라산국립공원 등’이 있는 제주도로 4박 5일간 다녀오는 것이 좋겠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랬더니 뜻밖에 전원 만장일치 의견에 따라 우리는 제주도 (4박 5일간 2015, 11.19~11, 23일)의 여행을 떠났다. 여행 일정 중에는 마지막 하루 전날 한라산 정상 오르기로 계획이 되어 있다. 3일간의 제주 여행을 구름에 달가듯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빡빡한 일정 속에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잘 보냈다.
이제 내일은 한라산을 오르는 날이다. 그런데 오후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온 아내가 여보 난 내일 한라산 등정 아무래도 힘들어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심정을 토로한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마음 한편으로 ‘옳지 잘됐다.’ 하고 쾌재를 불렀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맘에도 없는 말로 왜 한번 오기가 쉽지 않은데 이참에 나와 함께 오르자고 하니 아내와 자기가 가면 당신이 힘들 것이니 그냥 당신이나 편안하게 다녀오라고 한다. 띵호와 ~~~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일행들과 저녁을 먹고 제수씨와 마트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다녀온 아내가 맘이 변했는지 자기도 내일 한라산을 오르겠다고 한다. 아마 제수씨와 언약이라도 한 모양이다. ‘어이구 그러면 그렇지 괜스레 좋았다 망한 기분이다.’ 아내가 아니면 나에 주력으로 맘을 놓고 등산을 하면 한라산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까지 6시간 정도면 충분히 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내가 동참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하산하려면 적어도 8~9시간은 걸려야 할 것을 갔다. 떨떠름한 기분으로 잠을 청하다 보니 결국 잠을 설치고 2015년 11월 22일 일찍 일어나 산행 준비를 하고 나선다. 한라산 등반 이원은 5명뿐이다. 남은 인원 10명을 숙소에 남겨두고 우리 5명은 일찌감치 한라산국립공원 성판악 탐방 소에 도착해 김밥을 몇 줄 준비하고 8시부터 곧바로 한라산 탐방을 시작한다.
그런데 어제저녁부터 내린 비로 탐방로가 얼마나 미끄럽고 위험하던지 않아도 다리가 튼튼이 않아 평소에도 관절 약을 먹는 아내 걱정에 내 페이스대로 등산을 못 하고 가다 서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건 등산 하는 것인지 뭘 하는 것인지 산행길 내내 답답하기 짝이 없다. 나는 한라산을 이번까지 3번째 오른다. 두 번은 성판악에서 시작해 관음사 코스로 종주하며 7시간 만에 산행을 끝냈었다.
그런데 이번엔 한라산 정상에서 관음사 구간 쪽에 바위가 무너져 내려 종주를 하지 못하게 통제를 한다고 한다.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올랐던 코스를 되짚어 하산해야 한다. 예전에 두 번 한라산에 오를 땐 등산로가 자연 그대로 되어 크게 힘든 줄 몰랐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오르다 보니 등반코스 대부분을 정비하는 과정에 거의 전 구간이 돌계단으로 조성되어있어 여기에 비가 내려 얼마나 미끄럽고 위험하던지 다리 멀쩡한 내가 위험을 느낄 정도이니 아내 걱정이 태산과 같다.
초반에는 아내도 크게 어려움을 토로하지 않고 잘 오르는 것을 보며 안심을 했다. 그런데 얼마쯤 올랐을까 아직 진달래 대피소까지는 멀었는데 뒤를 쳐져 오던 아내 모습이 좀처럼 보이질 않는다. 협소한 등산로를 꽉 메워 올라오는 인파 속을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아도 보이질 않는다. 겁이 덜컹 난다. 미끌미끌 돌사닥다리 구간에서 삐끗해 다리라도 겹 찔리거나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맘이 놓이질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올라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며 아내를 찾아보지만 보이질 않는다. 불안한 마음에 전화하니 아내 왈 내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 인파 틈에서 그냥 지나쳐 올라왔다고 한다.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것이 천만다행이다. 생각을 하며 서둘러 인파를 요리조리 추월하며 오르다 보니 진달래 대피소를 얼마 앞두고 아내가 힘든 모습으로 오르고 있다.
진달래 대피소에서 간단히 간식을 먹고 우리는 다리 풀리기 전 다시 한라산 정상을 향해 오른다. 진달래 대피소에서 정상까지는 1.5킬로를 더 올라야 한다. 그런데 이곳 구간부터는 지나온 길보다 더 가파른 돌계단 길로 이어지며 주변은 온통 고사목 구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몇몇 해전만 해도 고사목 지대는 못 본 것 같은데 이상하다.
다행히 5명의 일행 중 내년에 팔순을 맞이하는 외사촌 매부와 제수씨는 뜻밖에 그 어떤 젊은이들 못지않게 앞장서 올라가 보이지를 않는다. 그런데 아내가 1,700m 고지 지대를 오르자 점점 더 힘들어하며 오른다. 마음 같아선 아내 배낭을 가슴에 안고 가야 하는데 내가 무슨 기자라도 되는 것처럼 카메라를 두 대나 가지고 사진을 찍으며 오르고 있어 쉽지가 않다.
모르는 척 하고 눈 꽉 감고 오르자니 내 맘이 편치 않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일부 구간이라도 아내 배낭을 빼앗아 두 개를 걸머지고 앞장서 오른다. 당행이 정상을 0.8km 구간에서야 편안한 나무 계단길이 나온다. 그런데도 아내는 맨몸인데도 버거워하며 오른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이곳 구간부터는 시야가 확 트여 조망이 일망무제 구간이라 한라산 저 아래 풍경이 한눈에 조망되고 순간순간 어디서 몰려온 운해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본 아내가 그 힘든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한라산에 오른 것이 얼마나 잘 생각하였는지 모른다고 기뻐한다.
그 모습을 보니 한결 마음이 푸근하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이 여편네야 아직 축배’ 들기에는 멀었어, 아직 반 시간은 더 올라야 하니 서두르지 말고 쉬엄쉬엄 오르라 당부해 놓고 나는 먼저 정상엘 오른다. 한라산 정상엔 등정 인파와 새까만 까마귀떼 들이 그 수를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우글우글한다.
뒤이어 아내도 마지막 피치를 다해 정상에 오른다. 이때 시간이 정오 12시 30분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산행을 시작해서 정확하게 4시간 반 만에 정상에 오른 것이다. 이 정도 주력이면 그 느린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는 정상에서 서둘러 기념사진을 찍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김밥과 과일을 나누어 먹는다.
그런데 걱정은 나와 함께 산행을 자주 했던 외사촌 누이동생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초주검이 다된 외사촌 누이동생 모습이 드디어 보인다. 누이동생을 맞이해 우리는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 다시 올랐던 길을 뒈지어 내려가야 하는 하산길에 들어선다.
하산길엔 다행히 함께한 일행 여자 셋이서 보조를 맞춰 하산하는 바람에 샘터 지점까지 함께 내려와선 그런대로 펑버집한 쫄 때 숲으로 이어지는 안전 구간이라 셋이서 안전하게 서두르지 말고 뒤 따라오라는 당부를 해놓고 이때부터 난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 하산으로 거의 산악 마라톤 수준으로 하산을 해 날머리에 들어선다.
이때 저 밖에서 등산하지 않은 10명의 일행들 중 동생이 나를 반가이 맞이하며 박수를 치고 기념사진을 찍어주어 8시간 만에 하산을 모두 마친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내려온 일행들은 40여분후 도착을 한다. 퓨휴! 기분 좋다. 더 의미가 깊은 것은 아내가 절대 만만치 않은 한라산 1,974m 등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 기쁘다. 이날의 영광을 사랑하는 여림이, 도영이 할망 아내에게 전한다.
등록일 : 2015-12-11조회 : 2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