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래 태풍雨속에 부산갈메기 “새한솔산악회” 관악산 산행
관악산은 예로부터 불의 산(火山)이라 하여 조선 태조가 궁터를 지금의 경복궁 자리로 옮길 때, 무학대사가 이곳은 관악산과 마주 보이는 자리로 관악산의 화기가 궁을 눌러서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정도전의 남쪽에 한강이 가로질러 있어서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받아 들여 지금의 경복궁을 창건하였다 한다.
그후 태종때 왕자의 난, 세조의 왕위 찬탈,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경복궁에 발생한 수차례의 화재가 발생한 것을풍수지리설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대원군은 경복궁을 재건할 때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에 바다의 신으로 상상의 동물인 해태 조각상을 만들어 세웠다.
관악산 연주대는 고려가 망하자 남은 유신 열 사람이 관악산 절에 숨어살며 경복궁을 바라보며 통곡을 했다 하여, 임금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연주대(戀主臺)라 불려 지게 되었다 한다. 이성계가 연주암을 중창한 뒤, 태종의 두 아들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은 태종이 왕위를 셋째 충녕대군(세종)에게 물려줄 뜻을 알고 관악산에 입산하였다 한다.
예전에 관악산을 삼성산이라 부른 것은 신라의 고승 원효,의상,윤필이 이 산에서 세 승려가 일막,이막,삼막의 세 암자를 짓고 따로 수도하여 득도하였다 하여 붙여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때 일막,이막은 소실되고 삼막사(三幕寺)만 남았다는 것이다. (산림청 발췌)
등록일 : 2021-08-20조회 : 1037